9월10일 쭉 따로살고 연락도 잘 안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미운 존재 그 자체였다.
유치원생 때부터 안좋은 기억들과.. 엄마와 동생과 나를 너무 힘들게 했었기에...
결국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랑 동생과 나 셋이 같이 살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도망갔다..
그 당시 50만원에 육박하는 외상값을 남기고.....
그 외에도 정말 아빠같지도 않은, 한 가족의 가장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일도 많았었다..
이 후 엄마와 같이 살게 됐고, 이 후 정말 간간히 엄마랑은 연락을 하는 것 같았는데 좋은 내용은 아니였다.
엄마가 힘들때.. 우리 집이 힘들때.. 전혀 도움도 안줬고 쌩판 남 마냥 살았기에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채로 청소년기를 맞이했고 지금 31살이 되어서는 그냥 미운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증오하게 됐다.
아버지 얘기만 나와도 큰소리가 나왔고,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에도 불쌍하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빨리 죽어서 우리 가족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위독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결국 9월 10일 오전 9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근데 같이 사는 분께서 무연고로 치룬다는 소식도 들었다.
소식을 들은 날에는 그냥.... 마음이 조금 아렸지만 속은 후련했다.
이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구나.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벌받았네.. 우리한테서 도망치고 새로 꾸린 가정에서도 얼마나 못했으면 무연고로 장례를 치룰까..
조금 아린 내 마음을 달래주려고 그 날 소주를 한잔 했다. 웃고 떠들고 신나게 마셨다.
근데............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폭풍같이 눈물을 흘렸다. 아니 오열했다.
무연고가 말이되냐고.. 아버지의 다른 가족한테 따졌다.
생각만 하면 더 나올 것 같지 않던 눈물도 계속 터져나왔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아무리 못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가보다.
그렇게 그 날은 눈물로 지새웠다...눈이 빠질 것 같아 진짜 더 울면 큰일나겠다 싶어 안울려고 했는데도 계속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뭐라고 했던게 효과가 있는지 정상적으로 장례는 치루겠다고 말을 바꾸더라..
장례식장도 안갔다.. 다른 가족이 오지 말라고 해서.. 그게 속상하지는 않다.
장례 정상적으로 치뤄줬으면 됐다.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물려준 것 이라고는 상처뿐이 없는 사람.
그래도 아버지라고 마지막 가는 길, 그 곳 에서는 아프지 말라고 기도해주며 보내드렸다.
이 후 추석이라 엄마,나,동생.. 모여서 많은 얘기도 하고 서로한테 위로도 많이 해줬다.
나의 위안, 나의 가족..
더욱이 건강 챙기고 더 위하며 잘 살아보자고, 남은 엄마한테는 꼭 개발자로 취직해 성공까진 아니더라도 우리 엄마 맘편하게 살게 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난 또 내일부터 열심히 공부를 할 것 이다. 넘어야 할 산이 많기에.. 더욱 정진해야 될 것 같다.
너무 심적으로 힘들었던 5일이였다. 다 털고 또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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